나는 신학교에서 바르게 공부하고 바르게 생활하며 바르게 교회사역을 하는 것에 대해
배웠다.
바르다는 것이 어쩌면 고지식하게 보이는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
원칙을 고수하되 융통성이 있는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게 내 소망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 그 교회는 과연 어떤 교회일까?
고민이다.
부교역자 생활만 벌써 9년째이다. 2001년 4월부터 사역자로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부교역자가 가진 사역의 한계를 요즘은 많이 느낀다.
부교역자에게 있어서 바르게 사역하고 섬겨나가는 것의 기준은
당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에게 있다.
물론 다는 그럴 것이 아닐 것이다.
교회마다 상황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기에...
음...그냥 주절주절 되고 싶다..
청년부 리더 MT를 가는 부분에 있어서 담임목사님의 한 마디면 가고 못가고가 결정된다.
부교역자가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는 것 역시 담임목사님의 한 마디가 필요하다.
물론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역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을 줘서
창의적으로, 능동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줘야한다.
아니면 사역자가 담임목사님의 한 마디에 인정을 할 수 있고 순종할 수 있는 권위가 필요하다.
그러고보니까 여기 와서 한 번도 능동적인 사역보다는 수동적인 사역, 창의적인 사역보다는 지시되는 일만 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지치는 것 같다.
여러모로 마음이 불편하다.
김호권목사님 같은 분을 다시 만나고 싶다.
끊임없이 인정해주고 격려해주고 칭찬해주는 그런 담임목사,
물론 잘못을 했을 경우에 엄청 꾸중하시기도 하지만 말이다.
부교역자는 격려와 칭찬속에서 창의적인 도전과 더불어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기 사역에 올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매번 검사받는 듯한 인상은 참 아닌 것 같다.
아니..검사를 받는 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없으려면 부교역자의 사역의 질보다 담임목사의 사역의 질이 훨씬 높아야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순종하기가 쉽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속에서도 순종을 해야한다.
이게 교회라고 한다.
교회는 군대의 계급체계보다 더 심하다고들 한다.
웃기지 않는가? 예수님은 그렇게 계급을 정해놓고 사역하시지 않았는데 왜 우리는 철저하게 계급을 따라갈까? 우습다.
어떤 조직이든 리더가 분명히 필요하지만 예수님의 리더십은 무릎을 꿇는 섬김에서 그 능력이 나왔다.
한 마디 한 마디 하시는 그 말씀에서부터 능력이 나왔다.
어제 금난새 지휘자의 토크를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본질..
어제도 말했지만 본질이 매우 중요하다.
그 본질, 원칙을 반드시 세운 그 본질에 충실함을 가지고 다가가는 설교와 다가가는 사역을 해야할 것이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 클래식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쉽게 다가가서 사람들로 하여금 클래식을 듣게 하는 능력이 그에게 있다.
하지만 쉽게 쉽게 한다고 해서 그에게 본질의 능력이 부족한가?
그렇지 않다. 능력은 충분하다.
나에게도 바로 이것이 필요할 것이다,
본질인 말씀사역은 충분해야한다. 그리고 늘 대중들에게 가깝게 다가가야할 것이다.
그냥 이리저리 주절주절이다.ㅋㅋㅋ
부교역자의 하루
- 2010.05.20 14:05
- 성우생각